
필진: 히로키 카토, 아치스(Arches) CEO
한국은 자본과 기술을 모두 갖추었다. 그러나 과연 글로벌 AI 인프라 경쟁의 속도를 따라잡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BCG에 따르면, AI 컴퓨팅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는 2030년까지 2조 1천억 달러(약 2,800조 원)에 달해 2023년 대비 약 10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정부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엔비디아와 AMD의 지원을 받는 국영 기업 '휴메인(Humain)'을 통해 AI 인프라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가속화하기 위해 수출 통제까지 완화했다.
반면, 한국은 이제 막 첫발을 뗀 수준이다. SK와 AWS가 울산에 7조 원(약 50억 달러) 규모로 추진하는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그 첫걸음이다. SK 최태원 회장은 AI가 "한국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울산 부지를 글로벌 허브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그는 이번 프로젝트가 "서울 외 지역의 첨단 기술 발전에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닌,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비용으로만 여기는 투자자들은 AI 시대의 가장 큰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AI 양극화, 한국의 위기
전 세계는 지금 거대한 컴퓨팅 혁신을 겪고 있다. 이제 AI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은 더 나은 모델이 아니라 인프라다. 맥킨지에 따르면, AI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5조 2천억 달러(약 7,000조 원) 이상을 데이터센터에 투자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클라우드 스토리지가 아니다. 차세대 인공지능을 구동하는, 에너지 집약적이고 GPU로 가득 찬 하이퍼스케일 시설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투자수익률(ROI), 건설 기간, 규제 장벽 등에 대한 우려로 많은 기업이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일례로 2025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에너지 공급 문제와 수요 변동을 이유로 오하이오주에서 추진하던 10억 달러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했다.
반면, 발 빠른 선도 기업들은 투자를 더욱 늘리고 있다. 구글, 메타, OpenAI와 같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올해에만 AI 인프라에 3,000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G42는 안정적인 에너지와 우수한 기술 인재를 찾아 케냐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풍부한 자본과 하드웨어 강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 이러한 '인프라 우선'의 흐름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AI 인프라 격차, 기술을 넘어 국가의 운명 가른다
전 세계 정부와 민간 기업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럼에도 150개가 넘는 국가는 여전히 AI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이제 기술 격차는 빅테크와 스타트업의 문제를 넘어, 국가 간의 격차로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AI 인프라의 분절 현상은 아래 세 가지 주요 요인에 의해 가속화된다.
- 반도체 수출 통제: 미국 주도의 대중국 반도체 칩 수출 규제는 핵심 기술 접근성을 제한하는 대표적 사례다. 미 상무장관 지나 러몬도는 해당 조치가 제재 회피 경로를 원천 차단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명시했다.
- 전력 인프라의 한계: 하이퍼스케일 프로젝트의 증가는 기존 전력망의 공급 능력을 초과하여, 다수 프로젝트의 지연 혹은 중단을 야기한다.
-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 법제화: 각국은 데이터 안보를 목적으로 자국 내 AI 인프라 현지화를 의무화하는 법률을 도입, 기술의 국지화를 강제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전력, 데이터 주권이 얽히면서 컴퓨팅 파워는 그 자체로 강력한 지정학적 무기가 되었다. 결론은 하나다. AI 인프라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미래를 지키는 전략적 해자이자 양보할 수 없는 주권 자산이다.
다음 격전지 AI 인프라, 한국의 승리 전략은
기회는 차세대 컴퓨팅 인프라, 특히 급성장하는 신흥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자본과 기술을 보유한 한국은 이 흐름을 선도할 유리한 고지에 있다. 단, 더 빠른 실행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신규 투자 분야는 다음과 같다:
- 동남아·중동·아프리카 주권 데이터 센터: 신뢰할 수 있는 해외 파트너를 찾는 정부 수요가 높다.
- GPU 리스 플랫폼: 코어위브처럼 자본 부담이 적은 온디맨드 컴퓨팅 모델이다.
- 엣지 AI 인프라: 대규모 실시간 AI 구동을 위한 저지연·에너지 최적화 시스템이다.
- 인프라 혁신 기술: 액침 냉각, 모듈형 배터리, 주권 클라우드 물류 등이다.
이들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기대 이상의 수익률이 발생한다.
AI 미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한국은 기존의 팹 중심 전략을 넘어, 전체 인프라 스택에 걸쳐 전략적 투자를 시작해야만 한다.
한국의 사각지대: 속도와 근접성이 중요한 이유
한국은 컴퓨팅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울산의 7조 원 규모 SK-AWS 프로젝트가 그 증거다. 하지만 이는 또한 대부분의 한국 자본이 반도체, 수출용 하드웨어, 국내 인프라와 같은 기존 분야에 묶여 있다는 더 깊은 패턴을 보여준다.
이호준 아치스(Arches) 한국 대표는 “한국 투자자들은 여전히 반도체나 하드웨어 같은 전통적인 강점 분야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세계는 주권 데이터 센터, GPU 마켓플레이스, 엣지 AI 인프라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가 곧 움직이지 않으면, 게임에 참여하기도 전에 다른 이들이 규칙을 정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한다.
보고서로는 채울 수 없는 격차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서울의 회의실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프론티어 시장 경쟁의 핵심은 속도, 맥락, 그리고 신뢰 기반의 현장 접근성이다. 한국 투자자에게 부족한 것은 자본이 아니라 현장성이다.
"프론티어 시장에서 가시성은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직 인프라 규제 당국자, 데이터 센터 개발자, 그리고 AI 네이티브 인프라를 구축하는 엔지니어들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라고 아치스(Arches)의 CEO인 히로키 카토는 말한다.
정책 수립을 기다리지 않는 자본의 힘
인프라는 새로운 석유이고, AI 시대의 통찰력은 새로운 알파다. 한국은 자본, 기술,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컴퓨팅 중심 경제에서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선점이다.
진정한 승자는 규제가 쓰이기 전에 행동하고, 시장이 레드오션이 되기 전에 손을 잡으며, 모두가 외면하는 곳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자들이다. 이러한 압도적 우위는 시장 보고서를 읽는 것을 넘어, 시장을 직접 만드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전문가 네트워크에서 비롯된다.
AI 골드러시에서 불확실성이 걷히길 기다리는 자본은,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